thebell Forum|2026 보험 Forum
"위협받는 대수의 법칙, 리스크 관리 플랫폼 진화해야"
저출산·고령화와 기후위기 등 구조적 변화가 보험산업의 근간인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을 흔들고 있다. 특정 세대에 위험이 집중되고 대규모 자연재해처럼 다수에게 동시에 피해가 발생하는 위험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위험 분산 방식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번의 사고가 동시에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고 인구구조 변화로 특정 연령대에 위험이 쏠리는 현상은 보험의 필요성을 낮추기보다 오히려 키우는 요인으로 꼽혔다. 보험사도 사고 발생 이후 손실을 보상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리스크 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커지는 구조적 위험, 보험 필요성 확대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사진)은 20일 서울 종로구 더벨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6 더벨 보험 포럼'에서 '사회변화에 따른 보험산업의 미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한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와 기후위기로 인한 대규모 자연재해가 전통적인 보험업의 근간인 대수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수의 법칙은 독립적이고 우연한 사고들이 많이 모일수록 손실을 예측하기 쉬워진다는 원리다. 보험사는 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계약자로부터 위험을 모아 개별 위험을 분산한다. 하지만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피해를 보는 동조화된 위험이나 특정 세대에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이 확대되면 기존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기 어려워진다.
한 연구위원은 "대수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보험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험이 늘어나고 있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위험관리 주체는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보험모델의 한계가 보험산업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고령화와 기후위기 등 구조적 위험이 커질수록 보험이 사회의 위험을 관리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을 필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통적 대수의 법칙에만 의존하는 보험모델은 한계를 맞겠지만 위험관리 인프라로서 보험의 필요성은 강화될 수 있다"며 "미래에도 보험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성은 유지되겠지만 전통적 의미의 보험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해 역할과 형태를 달리하면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의 역할도 사고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후 보상에서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사물인터넷(IoT)과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고 발생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예측·예방(Predict & Prevent)' 방식이다. 보험사가 위험 발생 자체를 줄이는 역할까지 담당하는 셈이다.
한 연구위원은 "과거 보험이 사후 보상해주는 성격이었다면 미래 보험은 IoT와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고 자체를 예측하고 방지하는 리스크 관리 서비스로 진화할 것"이라며 "단순한 금융상품에서 벗어나 기술을 이용해 재난을 예방하고 사회의 복원력을 유지하는 인프라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양·헬스케어로 영역 확장…기후위기 대응도 과제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보험사의 사업모델도 재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령화는 보험금 지급 증가 등 부담 요인이지만 동시에 요양과 헬스케어 등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위원은 시니어 관련 실버산업의 성장을 약속된 미래로 평가했다.
특히 요양사업은 보험과 인접한 영역인 만큼 보험사의 신사업으로 확장성이 높다고 봤다. 기존 건강보험 상품 판매에서 벗어나 건강과 삶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시니어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니어 고객에게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젊은 고객 확보는 보험산업의 장기 성장성을 좌우할 과제로 꼽았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보험금 지급이 집중되는 반면 젊은 층의 신규 가입과 유지율이 떨어지면서 세대 간 위험 분산 효과도 약화되고 있다. 특히 아직 보험 가입건수가 적고 장기간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2030세대의 생명보험 이탈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한 연구위원은 "전통적인 상품과 채널로는 MZ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MZ 고객의 상품과 채널 수요를 정조준하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디지털 채널을 통해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 역시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꼽았다. 기존의 사후 보상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에 기반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Parametric) 보험을 확대하고 기후 데이터와 위성정보, AI 기반 기상 분석기술을 활용한 위험관리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연구위원은 "기후위험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모델링하는 능력은 단순히 손해율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보험사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기후과학자와 언더라이터, 데이터 전문가 등 분야의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기후 전문조직을 설치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는 기술 활용과 보험의 사회안전망 기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계약자의 위험을 정교하게 구분할수록 저위험 고객에게는 보험료가 낮아지는 반면 고위험 고객은 보험 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